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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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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적인 문제 === 애초에 프랑스의 패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내부 상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군 수뇌부가 독일군의 라인란트 진주에 움직이지 않은 것은 영국의 지지가 없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의 독일군 상황은 영국 없이 프랑스 혼자만 나선다 하더라도 라인란트에서 다시 물러나야 할 만큼 나빴지만 괴벨스의 선전으로 프랑스는 독일군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영국 역시 1차 대전의 후유증으로 프랑스를 도울 여유가 되지 않았고, 독일군이 독일의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용빈-제2차세계대전 시 프랑스의 위기관리 및 조치 실패원인 (2015) 군사연구 제141집. P.215] 이러한 영국과 프랑스의 무관심 속에 고무된 히틀러는 재무장을 서둘렀다. 이것은 프랑스 하나의 문제가 아닌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등 집단 안보 체제를 맺은 유럽 각국이 나치 독일의 팽창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소극적인 대처를 했던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프랑스는 좌파 정권인 인민 전선이 집권 중이었는데 정치적인 혼란 때문에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뒤에도 중립을 취했고, 영국 역시 프랑스가 움직이지 않자 중립으로 전환했다. 이는 안슐루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프랑스는 영국이 호응한다면 군사 행동에 나서려 했지만 영국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움직이지 않았다. 즉, 두 나라는 서로 개전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눈치만 보다가 적시에 대응하는 것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독일이 주데덴란트를 합병하려 할 때 국방상 레노, 내무상 망델, 총사령관 가믈랭 등은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주장했다. 허나. 공군 사령관 비유맹은 공군의 준비가 미흡하다며 양보할 것을 주장했고 비유맹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프랑스는 독일의 주데텐란트 합병을 묵인했다. 1930년대 후반에도 프랑스의 내부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라발을 비롯한 친독일 인사들은 독일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했고, 24번이나 정권이 교체된 상황이었다. 프랑스가 내홍이 시달리자, 영국도 그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 대한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이에 프랑스의 총리 달라디에는 주 프랑스 미국 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은 프랑스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프랑스 혼자 싸우게 놔둘 것이 분명하다. 영국은 프랑스의 사상자 목록이 가득차게 내버려 둘 것이다.'[* 김용빈-제2차세계대전 시 프랑스의 위기관리 및 조치 실패원인 (2015) 군사연구 제141집. P.217]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는 프랑스도 즉시 참전하려 했다. 허나, 모레스 토레즈를 위시한 프랑스 공산당은 9월 2일에 독일에 맞서는 전쟁 수행에 동의했다가 막상 프랑스와 영국이 폴란드에 선전포고를 하자 입장을 바꿔 반전을 주장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소련이 내린 지령에 따른 것이었다. 동시기 나치독일, 영국이 그랬듯 군부의 갈등도 있었다. 가믈랭과 조르주는 계속하여 충돌했고 패탱은 독일과 싸우기보단 강화를 주장하였다. 프랑스는 전후에 이런 문제들을 들어 프랑스는 폴란드를 돕고자 해도 돕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김용빈-제2차세계대전 시 프랑스의 위기관리 및 조치 실패원인 (2015) 군사연구 제141집. P.221-222] 또한 폴란드가 너무 빨리 무너진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한달 만에 폴란드가 무너진 것은 영국과 프랑스 모두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폴란드는 소비에트 · 폴란드 전쟁의 승전국이었고 체코슬로바키아보다 더 우수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주라 전투에서 주력군이 전멸하며 사실상, 개전 2주만에 전쟁 수행 동력을 상실했다. 여기에 독 · 소 불가침 조약에 따라 폴란드의 동쪽 영토를 약속받은 소련이 참전하면서 폴란드는 영 · 프 양국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지 못했다. 두 번째, 1차 대전의 엄청난 피해가 크게 작용했다. 1차 대전기 동안 프랑스군은 841만 명을 동원했고, 이 중에서 132만 5천 명이 전사, 280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러한 피해는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 전략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마지노선에만 집착했다는 비판은 부적절하다. 프랑스는 마지노선 건설에 50억 프랑(약 1억 9500만 달러)의 자본을 투입했지만, 독일 역시 10억 라이히스 마르크(약 4억 달러)를 들여 지크프리트 선을 구축했다. 또한 마지노선에 투입한 것 때문에 일어난 군 예산의 불균형 역시 1934년에 프랑스가 기갑 부대를 확장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변화했다. 이러한 상황은 1936년 이후까지 지속되었다. 마지노선이 무용지물이었다는 비판 역시 옳지 못하다. 애초에 낫질 작전을 입안한 이유가 마지노선을 정면으로 뚫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Case Red by Robert Forczyk [[https://m.blog.naver.com/sk7635/223107896153|번역글]]] 세 번째, 대공황도 악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프랑스군은 1차 대전 시기의 기동전 교리를 발전시키코자 했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재무장이 어려워졌고 1930년대에 와서야 기동전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1931년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대공황 이전에 비해 크게 감축된 수준이어서 그 가믈랭조차 국방 예산의 감축에 우려를 표하며 사표를 낼 정도였다. 인민전선이 당선된 후 레옹 블룸이 국방 예산을 크게 늘렸지만, 인민 전선 정권도 경제 문제 때문에 국방 예산을 곧잘 감축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여전히 부족했다. 일례로 1938년 프랑스의 국방 예산은 10억 달러 규모였는데 적국인 나치 독일의 국방 예산은 120억 달러였다. 게다가 프랑스는 식민지 수탈과 지중해 패권을 위해 해군 양성에도 예산을 써야 했기에 육군 예산은 더욱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믈랭과 프랑스 군부는 예산 부족과 고령화 등 '현실적인 이유'를 명목으로 '선 방어 · 후 역습'을 골자로 하는 방어 중심의 전략 계획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 · 군사적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프랑스의 전략 계획 수립 과정을 보고 '극도의 보수성'이나 '참호전 답습' 운운하며 프랑스군을 비판하고 기동전을 주장한 드골을 '혁신가'로 칭송하곤 하는데, 실제론 정반대였다. 프랑스의 기동전 교리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보불 전쟁 이후부터 발전하고 세계 대전을 치르며 완성한 것이었다. 프랑스군이 원래 운용하던 교리가 기동전이고 공세를 부르짖는 엘랑비탈이었으며, 가믈랭의 조치는 여기에 변화를 주는 일종의 개혁이었다. 실제론 드골이야말로 기존의 교리를 유지하자는 보수파이고, 당대 프랑스 군부는 변화를 일으키자는 개혁파였던 것이다. 반대로 독일군의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기동 전술에 대해 충돌이 있었다고 하나,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기갑 부대의 급속 기동'''에 대한 것이었지 '''기동전'''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프리드리히 대제 이래 독일군의 장기는 고속 기동을 통한 방어와 공격, 포위 섬멸이었고 이를 궁극적인 전술 목표로 삼은 건 보수파 장교단과 소장파 장교단 모두 동일했다. 프랑스나 독일이나 출발점은 별 차이가 없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프랑스는 잘못된 변화를 한 셈이 되었고, 독일군은 '퇴화'한 프랑스군의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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